The Substance, 2024
한국어 제목: 서브스턴스
감독: Coralie Fageat
출연: Demi Moore, Margaret Qualley
어제 이 영화를 보기 전, 이미 요약본을 3주 전에 보았다. 징그러운 장면들이 많아서 괴로웠다는 후기들이 있어, 전편을 볼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를 요약한 영상 클립들이 유튜브에 워낙 많아 원작 대신 요약본을 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그걸로는 영 본 것 같지가 않다. 옛날에 많았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하이라이트 영상은 보고나면 더 궁금해서 원작을 찾아보게 했었기에 요약본을 본 걸로는 그 작품을 본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것이지. 물론 스포일링를 하지 않는 소개 영상과는 달리 요약본에서는 결말도 알려준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 암튼 결국은 영화를 보게 되었고, 대신 불편한 장면은 빨리 감기로 넘겼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성으로 태어난 존재들에게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한국처럼 외모 꾸밈에 유별나게 관심이 많고 문제의식 없이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고 '자기 관리'라는 말로 포장해서 쉽게 타인과 자신에게 꾸밈을 강요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인생에서 커리어나 대인관계와 같은 대외적인 사투를 하는 한편에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도 내면의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는 고단함이 있기 때문이다. 원하는 외모를 갖추기 위해 실제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산다. 그리고 나이들어 감에 따라 모든 인간이 겪는 신체적 노화의 상징인 주름과 흰머리에 대해서도 여성에게 훨씬 엄격한 잣대를 댄다.
반면, 영화에서 그려내는 남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밀려드는 역겨움을 참기 힘들다.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도, 식후 손이나 입을 닦는 기본적인 개인 위생관리를 소홀히 하고 담배 냄새를 풍기고, 그래서 꾸밈은 커녕 기본적인 '관리'조차 전혀 하지 않고도 그들은 그들 자신의 외모 상태와 관계없이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가치를 매기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만을 욕망하며 그녀들이 그들에게 늘 상냥하게 미소 지어주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이런 젊음에 대한 찬양은 여성을 소모품화 한다. 한때 뮤즈였지만 이제는 어느덧 나이가 든 Elisabeth 엘리자베스를 Sue 수로 갈아치운것 처럼. 이제 수는 엘리자베스를 혐오하며 (더 욕망 당하는 존재로서) 우월감을 느끼는데 어리석게도, 엘리자베스의 현재는 수의 미래일 뿐이다.
이렇게 불공정하게 비틀린 판에서 여성은 욕망하는 주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욕망 당하기를 갈구하며 스스로를 객체화시켜 자기의 얼굴과 몸을 거울에 비추어 이리저리 살피며 주름진 얼굴, 탄력없이 늘어진 살, 뚱뚱하고 못생긴 '나'로 인식해 비하하고 그런 '아름답지 않은 나', '늙어버린 나'에게 화장부터 각종 약물과 시술을 쓰고 때로는 굶겨가며 학대하기에 이른다. 또 여성의 그런 불안감을 자극하고 이용해 상품을 팔고 이익을 얻는데 혈안인 자본주의 사회도 이 판을 더욱 공고히 하는데에 한 몫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내적 외적 갈등와 싸움에 남성과 자본은 빠져있고, 여성만이 거울 속 나와 현실의 나로 분리되어 사투를 벌인다.
하지만 잊지말자. 처음 받아온 상자 속 설명서 중 가장 마지막 카드에는 "REMEMBER YOU ARE ONE"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래, 나는 하나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혐오하고 자책한다 한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는 한 존재이다. 어째서 내가 외부의 요구를 기준삼아 나 자신을 부정하고 나와 싸워야 하겠는가. 이제 각성하고 우리들을 이 판에서 구해내자. "나"는 유일한 존재니까 나를 파괴할 수도 있지만 나를 아껴 잘 먹이고 살피고 돌보는 것도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약속 시간에 맞춰 외출 준비를 마친 엘리자베스가 문을 나서려다 다시 들어와 갑자기 스카프를 두르고 화장을 고치는 장면이었다. 한번쯤은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화장을 고치며 약속 시간에 촉박해지자 거울과 시계를 번갈아 보지만 고치면 고칠수록 화장은 점점 더 엉망이 될 뿐이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화장을 하는데 그 장면이 떠올라 순간 섬뜩해졌다. 영화 속에 여러 불쾌한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영화인 것 같고, 그것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 같다. 빨리 감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한번쯤 봐도 좋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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